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수·순천 10.19 사건 (문단 편집) == 학살과 희생 == || [[파일:둘로 갈라진 여수 시민들.jpg|width=100%]] || [[파일:학살되어 가마니에 싸여진 시신.jpg|width=100%]] || || 여수서초등학교 교정에 모여 [[사상검증]]을 받고 있는 여수'''군민'''들[* 오른쪽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부역자 혐의를 받은 사람들로 11월 1일 그들 중 89명이 총살됐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학교 교정에서 학살되었다.] || 가마니에 싸여진 시신[* 사진에 나오는 시신은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에 다니고 있던 김영배(당시 21세)이다. 그는 반란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을 걱정하여 고향인 광양에 내려왔다가 사건의 한가운데서 좌파으로 몰려 학살당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호남신문사(현 [[광주일보]]) 사진 기자인 [[http://gjarchive.kr/art_cp05|이경모(1926~2000)]]로 김영배는 그에게 동향 출신 손아래 친구였다. 그는 시신을 찍으면서 죽은 친구에게 굉장히 미안해했다고 한다.]과 슬픔에 오열하는 누이(광양)[*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6.25 전쟁]] 당시의 사진이라고 알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 3학년 역사 교과서 6.25 문단에 '가족을 잃은 슬픔'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었을 정도.] || >"'''[[과잉진압|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히 조사]]해서 [[학살|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공산주의|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리니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혹 발포되드래도 전 민중이 절대 복종해서 이런 속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위해야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등한히 하다가는 자상 잔멸로 사망의 화를 피할 자가 몇이 아니될 위험성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 >[[이승만]]의 담화, 「동아일보」1948년 11월 5일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81105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8-11-05&officeId=00020&pageNo=1&printNo=7739&publishType=00020|#]] >하우스먼[* [[제임스 하우스만]]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학술지인 군사에서 '❍ Allan R. Millett/ 김광수 역, 하우스만 대위와 한국군 창설(1945-1950) 군사40호, 2000' 참고]은 비공개를 전제로 '''한국인들은 "잔인한 개자식"이고 일본인보다도 더 나쁘다고 말했으며, 한국인들에게 이를테면 처형한 시신을 가솔린으로 제거하여 처형 방법을 숨기고 그 책임을 공산주의자에게 돌리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잔인성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 >브루스 커밍스, 2017,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196 페이지 >'''죄 있는 사람은 살았고, 죄 없는 사람은 무조건 총살시켜 죽였다.'''[* 어쩌면 이 말은 여순사건 당시 발생한 좌우익의 학살행위, 더 나아가 한국전쟁 때 발생한 학살까지 다 함의할 수 있는 발언일 것이다.] >---- >당시 구례 [[대한청년단]] 단원이었던 김대홍(75)의 [[https://youtu.be/d3Cw3tfQodc?t=35s|증언]] 특히 이승만 정부의 진압군이 반란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사상 검증을 당하고 죄파로 판정되어 살해되는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제주 4.3 사건]]에서의 과잉 진압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진압 임무에 나선 경찰관과 극우 폭력 단체 "[[서북청년단]]"이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였다. 당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여수는 전통적으로 우익이 우세한 지역으로, 좌파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정부와 극우 단체의 탄압도 순천 지역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했다고는하나 여수에서도 학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수 근방 섬인 안도에서도 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http://yeosu.grandculture.net/yeosu/index/GC013A040101?category=%EC%9D%B8%EB%AA%85&depth=2&name=%EC%9E%90&page=19&search=%EC%A7%80%EC%B0%BD%EC%88%98|여수시 공식 자료]] 그리고수년 전부터 극단적으로 좌우익이 대립해 서로 보복 살상을 일삼던 순천에는 대규모 학살극이 일어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